빌드2017 둘째날 컨퍼런스는 윈도우10과 가상현실에 집중됐습니다. 첫 날에 풀었던 이야기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접하는 게 바로 이 윈도우와 가상현실이지만 발표가 둘째날로 미뤄졌다는 게 의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첫날 사티아 나델라 CEO가 언급한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인공지능이 접목된 ‘인텔리전트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인텔리전트 엣지’라는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서비스의 가장 밑바닥에는 머신러닝과 클라우드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서비스들이 만들어집니다. 윈도우 역시 하나의 제품에서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빌드에서 비치는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첫째날 키노트에 간택되지 못했으니 이제 윈도우도 찬밥’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대에는 윈도우를 총괄하는 테리 마이어슨 수석 부사장이 올라왔습니다. 제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그의 성공적인 다이어트가 먼저 눈에 띕니다. 최근 몇몇 행사들을 통해서 부쩍 살이 빠지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제는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정도로 다이어트에 성공했습니다.
테리 마이어슨은 가장 먼저 윈도우10의 가을 업데이트를 언급했습니다. 정식 이름은 ‘가을 크리에이터스 업데이트(Fall Creater’s Update)’입니다. 올 4월부터 업데이트를 시작한 크리에이터스 업데이트에 이은 큼직한 업데이트입니다. 업데이트의 중심은 역시 클라우드와 머신러닝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부분은 기기간 통합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근래 이야기하는 ‘Windows loves Devices’와도 연결됩니다.
‘원드라이브 온 디맨드’라는 서비스가 더해집니다. 애초 윈도우10은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인 원드라이브와 통합되어서 클라우드 저장소를 PC 안에 있는 하드디스크처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드라이브 온 디맨드는 클라우드를 이용해 여러 대의 PC, 혹은 모바일에서 파일을 동기화합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쓰는 PC에서 바탕화면에 워드 문서를 만들면 자동으로 회사 컴퓨터의 바탕화면에도 같은 파일이 담기는 겁니다. 이전에는 윈도우 탐색기의 원드라이브 폴더 안에 보관을 했다면 이제 클라우드를 통해 여러 기기에 파일을 동기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그래서 PC는 하드웨어로 공유될 수는 있지만 계정 단위로는 점점 더 개인화되는 방향을 이어갑니다.
연결은 클립보드로도 이어집니다. 파일이나 텍스트, 이미지 등을 잠깐 복사했다가 다른 창에 붙여 넣는 클립보드는 보통 메모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기기 안에서만 쓸 수 있는 기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클라우드를 덧붙여 기기간에도 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스위프트키가 시연됐는데, 이 키보드 앱에 마이크로소프트 계정을 연결하면 스마트폰에서 ‘복사’로 클립보드에 넣은 내용을 클라우드로 갈무리해 윈도우PC에도 붙여넣을 수 있게 됩니다. 기기간의 물리적, 혹은 운영체제적인 장벽을 허물어내는 셈입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젝트 로마’로 보여주는 기기간 연결이 현실화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윈도우10은 이제 전통적인 운영체제라기보다 모든 플랫폼을 연결하는 클라이언트 개념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큰 박수를 받았던 우분투 배시셸(Bash Shell)은 가을 크리에이터스 업데이트를 통해 수세(SUSE)와 페도라(Fedora) 리눅스로도 확장됩니다. 이 리눅스로 만든 서비스나 앱을 윈도우에서 손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개발 환경 때문에 운영체제를 오가거나 별도의 가상 머신을 띄우지 않아도 됩니다. 윈도우는 점점 더 리눅스를 한 몸처럼 끌어안고 있습니다.
윈도우10에도 머신러닝이 빠질 수 없습니다. 윈도우 역시 인텔리전트 클라우드 위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인텔리전트 엣지이기 때문입니다. 오피스365의 사용 습관을 분석하는 ‘그래프(Graph)’는 윈도우10에도 포함됩니다. 새 윈도우10은 이용자가 어떤 응용프로그램을 얼마나,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를 알기 쉽게 타임라인으로 만들어줍니다. 예민한 개인 정보가 담기게 마련이지만 그래프는 철저하게 개인정보를 관리합니다.
그래프는 코타나와 연결됩니다. “어제 만든 파워포인트 파일 열어줘”라고 코타나에게 이야기하면 코타나는 그래프의 타임라인을 기반으로 파일을 열어줍니다. 이는 기기를 넘어서 스마트폰을 켜고 “아침에 읽던 뉴스를 다시 열어줘”라고 말하면 PC에서 보던 뉴스를 스마트폰에 띄워주기도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기기간의 경계를 허무는 예이기도 합니다.
사진 앱도 흥미롭습니다. 윈도우의 사진 관련 앱은 마치 메모장처럼 수십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앱이 됐습니다. 검색어로 원하는 사진을 찾고, 사진과 영상의 내용을 분석해 자동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줍니다. 머신러닝이 접목된 것이지요. 새롭다기보다는 요즘 사진 관련 앱과 서비스의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앱이 모두를 놀라게 한 건 영상 편집 효과입니다. 영상에 실시간으로 특수 효과를 붙이는 겁니다. 데모에서는 축구공에 불꽃 효과를 붙이자 이 효과가 공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냥 따라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2D로 찍은 영상을 분석해 멀어지는 공에 따라 어색하지 않게 적절하게 붙습니다. 2차원 이미지를 3차원으로 읽어내는 것이지요.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에 3차원적인 요소를 더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이는 조 벨포어 수석 부사장이 언급한 ‘플루언트 디자인 시스템(Fluent Design System)’과도 연결됩니다. 앱과 그 안의 콘텐츠들이 더 단순하면서도 예쁘게 보이도록 디자인 가이드를 만든 겁니다. 이 안에는 및, 깊이, 움직임, 소재, 스케일 등 다섯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케일과 깊이를 고려한 디자인은 결국 가상현실, 복합현실(MR)등과 연결해볼 수 있을 겁니다. 단순히 예뻐 보이기 위한 3D가 아니라 실제로 윈도우와 그 앱이 만들어내는 화면에 공간 개념을 더하는 겁니다.
가상 현실도 빠질 수 없지요. 홀로렌즈는 점점 더 성장해서 이제는 시장에서 이를 이용하는 개발자가 2만2천명에 달하고, 콘셉트도 7만가지가 넘게 개발됐다고 합니다. 이날 키노트에서도 태양의서커스 무대 연출자들이 홀로렌즈를 이용해 무대를 만드는 시연부터 티센크루프가 가정용 승강기를 설계하는 시연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설계를 꼼꼼하게 한다고 해도 실제로 눈 앞에 띄워서 보는 것과 그 느낌이나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동안 소문으로 돌던 MR기기도 공개했습니다. 홀로렌즈 형태의 기기는 아니고 기존 오큘러스같은 가상현실 기기에 주변 환경을 읽는 카메라를 더한 것입니다. 가격은 300달러대로 저렴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써보니 해상도가 높고 화질도 뛰어납니다. 단순히 동작 센서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헤드셋 앞에 달린 카메라가 주변 공간을 읽어들이기 때문에 움직임의 정확도도 매우 높습니다. 에이서와 HP가 먼저 제품을 내놓았고, 델과 에이수스 등이 관련 기기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MR 콘트롤러도 함께 꺼내놨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MR 헤드셋들은 모두 앞에 카메라를 달아 손동작을 읽을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손을 이용한 여러가지 동작을 정확하게 인식하려면 아직까지는 콘트롤러가 더 낫긴 합니다. 이 콘트롤러는 동작 센서와 버튼, 터치패드, 방향키 등을 두루 갖고 있어서 산업용 가상현실부터 게임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습니다. 콘트롤러는 헤드셋과 함께 399달러 정도에 팔 계획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여전히 윈도우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사물인터넷부터 엑스박스, 홀로렌즈까지 모든 기기를 작동하는 기본 운영체제의 역할이면서, 개발자들에게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개발하는 토대가 됩니다. 비록 마이크로소프트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실한 역할을 다지지는 못했지만안드로이드와 iOS를 서비스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과감하게 꺼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외부 플랫폼과 윈도우의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지금도 윈도우10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나온 윈도우10과 지금 윈도우10은 분명 다릅니다. 디자인이나 기능 뿐 아니라 MR같은 플랫폼 지원까지 모두 업데이트만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철학과 전략 변화가 가장 예민하게 반영되는 운영체제가 됐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IT 칼럼니스트 최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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