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웹툰 작가 소민지씨. 그녀는 그림을 통해 청각장애 부모로서 청인 자녀 양육에 필요한 정보를 세상에 나눕니다. 청인 자녀를 양육하면서 필요로 했던 정보를 얻기 어렵고 사회적 제약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소민지 작가는 웹툰을 소통의 방식으로 선택했습니다. 현재 5천 명 가까운 독자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농인 엄마와 청인 자녀의 일상을 그림으로 전하는 인스타그램 웹툰 작가 소민지씨. 수어로 ‘연결’을 표현하고 있다.
일찍이 깨달은 듣는 것 중심의 세상
25번! 일어나서 75쪽 읽어봐. 25번 자리에 없니?
소민지 작가의 학창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수업 시간에 자신이 불릴 때마다, 옆자리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듣는 것’ 중심의 사회로 기억합니다. 정보에서 소외된 그녀가 세상과 이어지기 위해선 늘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세상과의 연결을 꿈꾸기 보다는,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 안에 적응해 나가고자 했습니다.
어릴 적 좋아했던 그림도 어느새 잊고, 서울의 한 수어 통역센터에서 통역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0년 전, 통역사 일을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웹툰 작가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창작자로서 여정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언어의 한계를 실감하게 됐습니다.
언어의 한계가 곧 창작의 벽이 되는 농인 작가
농인에게 한글 읽고 쓰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인에 대해 ‘듣기 어렵다’는 점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들 중 한글을 읽고 쓰는 데도 익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인은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농인에게 모국어는 수어이며, 한국어는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지죠. 예를 들어 ‘모르다’, ‘모르지’, ‘모르더라’처럼 비슷해 보이지만 뉘앙스가 다른 표현들이나,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의성어와 의태어는 특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웹툰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어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합니다. 서툰 한국어 표현 하나가 작품 전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죠.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녀는 언어의 한계가 곧 창작의 한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많은 농인 예비 작가들이 한국어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한국어 표현에 익숙하지 않으면, 원고를 다듬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결국 기다림이 따르고, 그 시간 동안 창작의 흐름은 끊어집니다. 언어의 문턱이 어떤 농인 작가에게는 혼자 창작을 이어 나가기 힘든 또 하나의 벽이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인 작가들이 서로의 글을 교정해주는 피드백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일년도 채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문법 실력이 뛰어난 몇몇 작가에게 교정 요청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과도하게 치우친 시스템은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코파일럿과 함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소민지 작가.
한계를 넘어, AI로 여는 창의성의 새로운 차원
한국어 표현 때문에 반복적으로 벽에 부딪히는 농인 창작자들을 마주하게 된 그녀는 AI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AI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 대화형 AI가 일상에 쓰이기 시작한지 반년 정도 지나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AI가 한국어 문법을 고쳐준다면 어떨까?
줄곧 AI에게서 발견한 가능성을 마음속에 품어왔던 그녀는 올해 5월, 마침내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기회로 Microsoft Elevate의 AI for Impact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 순간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혼자서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는 농인 작가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며, 그들의 어려움을 꼭 해결해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AI와의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AI에게 질문을 건네는 일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이거 해줘’, ‘이거 아니야’, ‘다른 주제로 해줘’ 이러한 단순한 말들로 AI와 대화를 이어오고 있었죠. 창작에 활용하기엔 단순한 지시만으로는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 AI는 자주 엉뚱한 답을 내놓기 일쑤였습니다.
AI를 교수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한 멘토의 조언은 AI와의 대화를 되짚어보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좋은 답변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렇게 해봤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요?’처럼, 마치 교수님께 질문하듯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었죠.
그렇지만 한국어가 외국어나 마찬가지인 농인들이 AI에게 디테일한 질문을 제시하며, 협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작 가장 어려운 건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 그 자체였죠. AI를 진정한 창작 도구로 활용하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돌파구는 Microsoft Elevate의 AI for Impact 프로그램을 통해 Microsoft Copilot의 활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 단체를 위해 기획한 AI 역량 강화 프로젝트로, 기초 교육부터 전문가 멘토링, 실습 중심의 교육까지 단계별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성으로 마련돼 있었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약 1만 2천 명이 기초 교육에 참여했고, 30개 팀이 오프라인 집중 교육에 참가했습니다. 이중 5개 팀의 아이디어는 실제 AI 에이전트로 개발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녀 역시 이번 프로그램을 마치며, 농인 창작자를 위한 ‘웹툰 스토리보드 작성 도우미’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시작된 Copilot과의 작업, 그녀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드디어 새로운 조력자를 얻은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AI와의 협업으로 한국어 문법 교정을 기대했던 그녀에게, Copilot은 단순한 교정을 넘어 창작의 흐름을 열어주었습니다. 웹툰 작가로서 스토리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도록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낸 것이죠.
등장 인물 간의 갈등 장면을 넣고 싶어.
그녀가 이렇게 질문하면, Copilot은 단순히 장면 A, B, C를 대답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소설 형식으로 감정을 묘사해줘’, ‘드라마 대본처럼 긴장감 있게 표현해줘’와 같이 창작에 더 효과적인 질문을 먼저 제시했습니다. 이 방식은 그녀가 원하는 장면을 더 풍부하게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Copilot에 답변한 내용을 토대로 스토리와 콘티는 점점 더 창의적이고 완성도 있게 발전되어 갔습니다. 동시에 문장도 올바른 문법으로 다듬어졌죠. 한국어 표현과 인물의 자세, 배경 같은 요소들도 Copilot과의 협업을 통해 빠르게 해결됐습니다. 손으로 그리며 많은 시간을 들였던 배경 작업 시간도 크게 줄었습니다.
AI로 진짜 창작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녀는 이제 농인 작가들이 망설이지 않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더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직접 확인했죠. 무엇보다, AI와의 협업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농인 창작자에게 먼저 질문하는 AI
그녀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농인 작가가 AI를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농인에게 한국어로 디테일한 질문을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해답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AI가 먼저 질문하도록 만들자.
이 생각의 전환은 곧 농인 창작자를 위한 AI 에이전트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그녀가 만든 이 AI는 먼저 질문을 제시하고, 작가는 그에 간단히 답만 하면 됩니다. 답변을 바탕으로 스토리와 그림 콘티가 자동 생성되고, 문법 교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 AI를 활용하자, 웹툰 작업 과정이 크게 단순화됐습니다. 몇 번씩 피드백을 거쳐야 했던 기존 방식보다 효율성은 물론 이야기의 완성도까지 모두 향상됐습니다.
문법만 보지 말고, 스토리 전체를 보라.
즉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문법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 핵심은 농인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 말로 농인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데 가장 본질적으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AI와 함께 창의성이 증폭되는 새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이 AI에이전트를 써본 그녀의 동료가 전한 말입니다. 이제 농인 작가들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써 내려가고,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5년 11월, 소민지 작가가 농·난청인 예비 창작자들을 위해 기획한 첫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이 열렸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 AI 활용 교육으로 확장
소민지 작가의 도전은 AI 활용 교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11월 서울 성동구의 한 강의실에서는 그녀가 직접 기획한 첫 번째 AI 활용 강연이 열렸습니다. 이날 모인 7명의 농·난청인 예비 창작자들은 망설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수업에 적극 참여하며, 강연 종료시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혀 주변 동료들이 웹툰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죠
하지만 그녀는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가르치면서 자신이 발견한 가능성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 경험을 계속 나누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농인 창작자들에게 ‘AI와 협업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AI
농인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극히 소수이죠.
소민지 작가는 자신이 겪는 문제를 모두가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곧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이 어려움이 매우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장벽은 다수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틀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실은 누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며, 언어 역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AI는 농인 창작자들에게 넘기 어려웠던 경계 너머로 발을 내딛게 해준 세상과의 연결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세상과 온전히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죠.
소민지 작가가 자신이 기획한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에서 수강생들의 웹툰 창작 실습을 지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단단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농인 창작자들이 AI라는 조력자와 함께 창작의 한계를 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며 그 꿈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요. AI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과 연결되기를 희망합니다.